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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30년 전 어머니의 청국장 내음이 되살아난다. 냄새와 기억

by kinghenry 2025. 7. 19.

어느 날 문득 스쳐 지나간 찌개 냄새에 어린 시절의 부엌 풍경이 생생히 떠오른 적이 있을 것이다. 기억은 시각이나 청각보다 냄새를 통해 더 강렬하고 갑작스럽게 되살아나는 경향이 있다. 이 글에서는 냄새가 어떻게 기억을 자극하는지, 뇌의 어떤 구조가 작용하는지, 또 향기가 감정, 학습, 트라우마 회복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심리학적 원리를 다양한 연구와 함께 탐색한다.

후각은 가장 오래된 감각이다

후각은 인간이 가진 오감 중 가장 원초적이고 진화적으로 오래된 감각이다. 시각이나 청각과 달리 후각 신호는 뇌의 '감정중추'인 편도체와 '기억 저장소'인 해마를 거쳐 대뇌피질로 향한다. 이는 냄새가 감정과 기억에 빠르고 깊게 연결되는 생물학적 근거가 된다.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의 연구(“Olfaction and the Emotional Brain”, 2003)는 후각 자극이 직접적으로 변연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냄새가 감정과 기억을 가장 빠르게 불러일으키는 자극이라고 설명했다. 즉, 냄새는 감정을 우회하지 않고 직접 자극하며, 기억을 통째로 소환하는 매개체가 된다.

냄새와 기억, 감정, 집중력

향기는 기억의 문을 연다

심리학에서는 특정 자극이 과거 경험과 연결되어 기억을 되살리는 현상을 '연합기억(associative memory)'이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향기는 가장 강력한 연합 자극 중 하나다. 특히 유년 시절의 향기 경험은 감정까지 함께 저장되기에, 훗날 다시 그 냄새를 맡았을 때 단순한 정보가 아닌 ‘경험 전체’가 복원된다.

1990년 허즈비크와 큐즈넬이 진행한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이 특정 향기를 맡았을 때 시각적 단서보다 더 정서적으로 강한 기억을 떠올렸다고 보고되었다. 이처럼 향기는 단순히 회상만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의 분위기, 감정, 체온까지도 함께 불러오는 타임머신과 같다.

냄새가 감정을 이끄는 방식

후각은 감정 조절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라벤더나 로즈마리 향이 불안 감소에 도움이 되는 것은 단순한 심리적 착각이 아니다. 일본 교토대의 연구(“Fragrances and Emotion”, 2006)에 따르면, 특정 향이 자율신경계를 조절하며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긍정적 감정을 유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향기 마케팅이 상업 공간에서 활발히 활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향기는 고객의 머무는 시간을 늘리고, 브랜드 이미지와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연결해 기억에 남게 만든다. 후각은 의식적인 주의가 없어도 자동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감정적 개입이 강한 반응을 유도한다.

냄새는 학습과 집중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냄새는 기억뿐 아니라 학습 효과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2003년 독일 뤼베크 대학교에서 진행한 유명한 실험에서는, 단어 학습 중 로즈 향을 맡은 참가자들이 수면 중 동일한 향을 다시 맡았을 때, 단기 기억 유지율이 평균보다 20% 이상 높게 나타났다.

이는 향기가 '기억의 저장 맥락'으로 작용하여 회상 과정에서도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정 향기를 학습 시기에 함께 노출시키면, 시험이나 발표 등 실전 상황에서 기억을 더 잘 불러낼 수 있다. 이는 학습 공간이나 사무실에 향기 설계를 도입하는 근거로도 활용된다.

향기와 트라우마 회복: PTSD와의 관계

냄새는 트라우마 회복의 도구로도 활용된다. 역설적이게도 트라우마 피해자들에게는 특정 향기가 플래시백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이를 역으로 활용해 기억 재처리와 감정 중화를 돕는 치료 기법도 존재한다. 특히 PTSD 치료에서는 냄새 노출과 함께 안정적 자극을 병행하는 기법이 활용된다.

2018년 미국 콜로라도대학의 연구(“Scent exposure therapy for PTSD”, Journal of Trauma, 2018)에서는, 향기 노출 요법이 불안 수치를 약 30% 감소시켰고, 특정 사건의 감정적 강도도 완화되는 효과가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이는 냄새가 감정의 연결고리임을 다시 한 번 입증하는 사례다.

문화와 향기의 기억: 국적에 따라 달라지는 회상,  나는 좋기만 한데...

향기는 문화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동일한 향이라도 자란 환경이나 가족의 문화에 따라 전혀 다른 정서 반응을 유도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된장국이나 청국장의 냄새가 고향과 어머니의 기억을 소환하지만, 서구권에서는 이 냄새가 이질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

2015년 프랑스 리옹대학의 다문화 연구에서는, 동일한 라벤더 향을 여러 국적의 참가자에게 맡게 했을 때, 프랑스인은 휴식과 자연을 연상했지만 중국인은 약국이나 병원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는 향기 자극이 단지 생물학적이기보다는, 삶의 경험과 문화적 맥락을 반영하는 감각임을 보여준다.

냄새와 기억은 뇌가 빚어낸 마법이다

결론적으로 냄새는 단순한 감각이 아닌, 감정, 기억, 사고, 감각을 교차 연결시키는 뇌의 통로다. 시각이나 청각과는 다르게 후각은 가장 원초적인 구조를 지니며, 그만큼 깊고 무의식적인 영역까지 자극한다. 냄새는 기억을 깨우고, 감정을 흔들며, 때로는 삶의 방향까지 바꾸는 강력한 심리적 자극이다.

현대 심리학은 향기를 감정 조절, 학습 보조, 심리 치료, 마케팅 전략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하고 있다. 우리는 향기를 맡는 순간, 단순히 냄새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와 다시 만나는 셈이다. 30년 전 어머니가 끓이던 청국장의 내음이, 오늘 우리의 뇌와 마음을 따뜻하게 흔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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