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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길잃은 어르신들. 치매와 공간지각능력 손실, 방향세포와 장소세포에 관해서

by kinghenry 2025. 7. 20.

치매 환자들이 자주 길을 잃거나 익숙한 장소에서도 방향을 헷갈리는 이유는 단순한 기억력 문제만은 아니다. 공간지각능력의 저하가 함께 일어나기 때문이다. 공간지각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위치를 파악하며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 인지 기능 중 하나다. 이 글에서는 공간지각능력과 기억의 관계, 뇌 구조의 변화, 실험 사례, 예방적 훈련 방법 등 다양한 심리학적 관점에서 치매와 길찾기 문제를 탐색해본다.

공간지각이란 무엇인가?

공간지각은 주변 사물과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것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인지 능력을 말한다. 이는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서, 뇌가 시각 정보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고차원적 기능이다. 공간지각은 후두엽에서 시각 자극을 처리하고, 두정엽에서 그 위치적 관계를 분석하며, 해마에서는 공간적 배치를 기억한다.

건강한 사람의 경우 이러한 기능이 자연스럽게 통합되지만, 알츠하이머성 치매나 혈관성 치매 환자는 두정엽과 해마의 위축으로 인해 이 통합 능력이 현저히 저하된다. 이로 인해 실제 환경에서는 사물을 헷갈리거나 방향 감각을 잃게 된다.

해마의 위축과 공간기억 손실

해마는 뇌 속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주요 기관 중 하나로, 특히 공간적 기억과 깊은 관련이 있다. 해마는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어느 방향으로 이동했는지를 저장하고 판단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알츠하이머 환자에게서 해마는 가장 먼저 손상되는 뇌 부위 중 하나다.

1997년 Maguire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런던의 택시기사들은 일반인보다 해마의 크기가 크고, 특히 공간정보를 저장하는 후방 해마가 발달해 있었다. 반면 알츠하이머 환자의 경우 같은 부위가 위축되며, 이에 따라 길을 기억하거나 방향을 잡는 능력이 급격히 약화된다. 이는 길을 잃는 현상이 단순한 ‘깜빡함’이 아닌 뇌 구조 변화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치매와 공간지각능력, 해마의 위축, 공간기억 손실, 방향감각 장애

거울인지와 방향감각 장애

치매 환자들이 자신을 거울 속에서 인식하지 못하거나, 좌우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증상은 공간지각의 일종인 ‘거울인지능력’과 ‘방향감각’이 손상되었기 때문이다. 좌우 방향감각은 두정엽에서 처리되며, 특히 자기중심적인 시점과 타인의 시점을 구분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2015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의 실험에서는 치매 환자들이 좌우 회전 방향을 따라가는 테스트에서 일반인 대비 40% 이상 오류율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추상적 개념인 '오른쪽', '왼쪽'조차도 치매 환자에게는 인지하기 어려운 고차원적 판단임을 보여준다.

익숙한 길에서도 길을 잃는 이유

많은 가족들이 “매일 가던 길인데 왜 갑자기 못 찾을까?”라며 의문을 갖는다. 그 이유는 ‘자동화된 길찾기’가 공간지각과 기억의 협업에 의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익숙한 길은 해마에 저장된 기억과 시각적 단서의 조합으로 재현되는데, 치매 환자의 경우 어느 한 쪽이라도 손상되면 전체 경로 인식이 무너진다.

또한 시각적 단서, 예를 들어 특정 표지판이나 건물 색깔 같은 것이 바뀌면 혼란은 더욱 커진다. 2020년 일본 게이오대학의 연구에서는 도심의 환경이 변화하면 치매 환자들의 길찾기 정확도가 평균 30% 이상 떨어진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는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 저하가 공간인지에 얼마나 민감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시사한다.

뇌의 GPS: 방향세포와 장소세포

2014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존 오키프와 모저 부부의 연구는 뇌 속에 '장소세포(place cell)'와 '격자세포(grid cell)'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장소세포는 우리가 현재 있는 위치를 인식하게 해주고, 격자세포는 이동 거리와 방향을 계산하게 해주는 일종의 내부 GPS 역할을 한다.

치매는 이러한 세포의 활동성을 감소시키며, 결국 위치 파악 및 경로 예측 능력을 약화시킨다. 이는 단순한 기억력 문제를 넘어서, 뇌의 ‘공간적 지시 체계’ 자체가 손상된 결과다. 최근에는 뇌파를 분석하여 이 방향세포들이 얼마나 활성화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실험들도 이어지고 있다.

공간지각 훈련의 가능성과 예방법

공간지각 능력은 어느 정도까지는 훈련을 통해 유지되거나 보완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상현실 기반의 길찾기 게임, 공간 기억 훈련 앱, 미로 탐험 훈련 등이 치매 환자들의 공간인지능력을 개선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보고가 있다.

2019년 미국 UCLA의 연구에서는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한 가상 공간 훈련을 통해, 6주 후 해마 활성도가 유의미하게 증가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실제 길찾기 능력 테스트에서도 평균 수행률이 18% 상승하였다. 이러한 연구는 단순 기억력 훈련을 넘어서, ‘공간 감각 훈련’이라는 새로운 예방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치매 예방을 위한 환경 설계 전략

치매 환자들의 길찾기 능력을 돕기 위해서는 물리적 환경의 설계도 중요하다. 색상 대비가 분명한 벽, 반복되는 시각적 패턴, 일정한 조명, 명확한 방향 표식 등은 공간인지능력이 저하된 사람들에게 시각적 안전망 역할을 한다.

2017년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의 연구에서는, 이러한 환경 설계를 도입한 요양시설에서 환자들의 길잃기 빈도와 불안 행동이 각각 35%, 28% 감소했다고 보고하였다. 이는 치매를 단순히 약물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인지적 배려가 깃든 공간 디자인’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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