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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길 찾기 연습을 많이 하면 치매가 예방될까? 런던 택시드라이버 이야기

by kinghenry 2025. 7. 22.

치매 예방에 효과적인 두뇌 훈련법은 무엇일까? 최근 뇌과학 연구는 '공간지각 능력'과 '기억력'의 밀접한 관계에 주목한다. 특히 런던의 택시 운전사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반복적인 길 찾기 훈련이 해마의 크기와 기능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공간지각 훈련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공간지각과 기억력의 관계, 런던 택시 드라이버 연구 사례, 그리고 이를 활용한 인지 훈련 방안까지 폭넓게 살펴본다.

길을 잘 찾는 사람의 뇌는 어떻게 다를까?

공간지각 능력은 우리 뇌의 '해마(Hippocampus)'라는 구조와 깊은 관련이 있다. 해마는 공간을 인식하고 기억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특히 지형, 거리, 방향 등을 정확히 파악해 머릿속에 ‘지도’를 그리는 능력에 관여한다. 길을 잘 찾는 사람은 해마가 더 발달되어 있다는 연구들이 다수 보고되었다. Maguire et al.(2000)의 연구는 런던 택시 운전사들의 뇌를 MRI로 촬영한 결과, 일반인보다 후측 해마의 회백질이 더 크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반복적인 공간 정보 활용이 뇌 구조에 실제 변화를 일으킨다는 강력한 증거로 해석된다.

런던 택시드라이버의 해마가 커진 이유

런던은 수백 개의 도로와 복잡한 골목길, 일방통행로가 뒤엉킨 대도시다. 이곳에서 택시 운전사가 되기 위해선 'The Knowledge'라는 까다로운 길찾기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이 시험은 25,000개 이상의 도로와 수천 개의 주요 건물, 랜드마크에 대한 완전한 암기를 요구한다. Maguire 박사팀의 연구(Maguire et al., 2006)에 따르면, 이 과정을 준비하는 택시기사 지망생들은 훈련 기간 동안 후측 해마의 회백질이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공간 탐색’이라는 활동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뇌 자체를 바꾸는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런던 택시드라이버와 해마, 그리고 치매

왜 버스 드라이버가 아니고 택시 드라이버일까?

Maguire 박사의 런던 택시기사 연구에서 흥미로운 비교 대상은 버스 운전사였다. 런던 시내를 매일같이 주행하는 직업이라는 점은 같지만, 택시기사만 해마가 비대해진다는 차이를 보였다. 이유는 바로 ‘경로 선택’과 ‘공간 탐색’의 유무다. 버스 기사들은 정해진 노선을 반복적으로 운전하기 때문에, 능동적인 공간 탐색을 하지 않는다. 반면 택시기사들은 실시간으로 최적 경로를 판단하고 새로운 루트를 계산해야 하므로, 해마의 지속적 자극이 발생한다. 이 차이는 뇌의 유연성과 인지 부하 차이에서 비롯되며, ‘단순 반복’이 아닌 ‘문제 해결형 탐색’이 해마를 더욱 활성화시킨다는 신경과학의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는 단순한 정보 암기보다 능동적 판단이 뇌를 성장시키는 데 더욱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해마와 공간기억 능력, 치매의 관계

해마는 치매, 특히 알츠하이머병의 조기 손상 부위로 알려져 있다.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들은 길을 잘 못 찾고, 익숙한 장소에서도 방향 감각을 잃는 증상을 보이곤 한다. 이는 해마 기능이 저하되면서 공간기억 능력이 함께 무너지는 전형적인 사례다. 따라서 해마를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활성화하는 활동은 알츠하이머 예방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한 종단 연구(Scarmeas et al., 2009)는 공간인지적 활동을 자주 수행한 노인들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치매 발병률이 현저히 낮았다고 보고하였다.

장소세포, 방향세포, 격자세포의 협업

공간지각 능력은 단순히 해마 하나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해마 내부의 '장소세포(place cells)'는 특정 장소에서만 반응하며, '방향세포(head-direction cells)'는 머리의 방향을 감지하고, 내측 측두엽 피질에 존재하는 '격자세포(grid cells)'는 위치를 격자 형태로 정렬해 인식한다. 이러한 세포들이 협업하여 우리의 뇌 속에 ‘공간 지도’를 만들어낸다. Moser 부부가 진행한 동물실험(Nobel Prize, 2014 수상 연구)에 따르면, 이 세포들은 장소 기억, 공간 추론, 탐색 행동에 핵심적 역할을 하며, 인간에게도 동일하게 작동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VR 공간 훈련이 뇌를 바꾼다

최근 연구에서는 가상현실(VR)을 활용한 공간지각 훈련이 실제 해마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음이 밝혀졌다. Clemenson & Stark(2015)는 비디오 게임을 통한 가상 탐험 활동이 해마 기반의 기억력 향상에 효과가 있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하였다. 연구 참여자들은 3D 미로 탐험 게임을 플레이한 뒤, 공간기억 테스트에서 통제군보다 높은 성과를 보였다. 이러한 결과는 디지털 환경에서도 공간지각 능력 훈련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특히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비침습적 뇌 훈련 방법으로 기대되고 있다.

디지털 지도 시대에 잃어버린 훈련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우리는 실시간 내비게이션에 점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뇌의 특정 기능 사용을 줄이는 부작용도 수반합니다. 2016년 연구(“Use it or lose it: GPS use and hippocampal atrophy”, JAMA Neurology)에서는 스마트폰 GPS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사람일수록 해마 활동이 적고, 공간 지각력이 약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는 디지털 기기의 편리함이 오히려 뇌의 훈련 기회를 줄이고 있다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치매 예방을 위해서는 기술 의존을 줄이고, 실제 환경 속에서 길을 찾고 기억하는 습관을 되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걷기 운동과 더불어 길 찾기 훈련을 병행하면, 뇌 건강에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길 찾기 훈련이 곧 특별 두뇌 훈련이다

일상에서 우리가 무심코 하는 길 찾기 활동은 사실 고차원적인 뇌 기능을 동원하는 복잡한 작업이다. 지도를 읽고, 지형을 해석하며, 방향을 설정하고, 경로를 계획하는 모든 과정이 해마와 전두엽, 두정엽의 협업을 필요로 한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며 스스로 길을 찾는 습관은 단순한 이동 이상의 효과를 준다. GPS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공간을 인식하려는 노력이 해마를 자극하고, 기억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동시에 훈련시키는 자연스러운 두뇌 운동이 된다.

공간을 인식하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과정은 뇌의 여러 영역을 동시에 작동시키는 복합적인 인지 활동이다. 시각 피질, 전두엽, 해마, 측두엽 등 다양한 부위가 유기적으로 협력합니다. 특히 지도 없이 직접 길을 찾아가는 능력은 ‘내비게이션 전략’을 뇌에 직접 훈련시키는 효과를 줍니다. 이는 단순한 기억 암기나 퍼즐 맞추기보다 해마를 더 적극적으로 자극하며, 뇌의 회로망 형성을 돕습니다. 런던 택시기사처럼 물리적 경로를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하고 예측하는 과정을 반복하면 뇌의 정보 처리 방식 자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지도를 보지 않고 목적지를 찾는 연습만으로도 해마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Brunec et al., 2017).

그렇다면???!!!!!           치매 예방, ‘지도 없이 다녀보기’부터 시작하자

뇌 건강을 위해 별도의 훈련실이나 복잡한 게임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길을 찾는 행위, 동네를 탐색하며 걷기, 지도를 보고 경로를 외워보기 같은 작은 실천이 중요합니다. 가능한 한 자주 새로운 길을 걸어보고, 방향을 스스로 예측하는 습관을 들이세요.  또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경로를 미리 분석하고 실제로 얼마나 정확히 도착했는지를 검토하는 것도 훌륭한 훈련입니다.  일상 속 공간 감각을 키우는 이 습관들이 모여, 해마의 기능을 강화하고 기억력 유지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기술의 도움 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이동하는 능력이야말로, 진정한 인지 자립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WHO에서도 치매 예방을 위한 비약물적 전략으로 ‘인지 자극 활동’을 권장하며, 여기에 공간지각 활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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