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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협상의 기술] 휴리스틱+앵커리지하라

by kinghenry 2025. 7. 31.

관세가 전세계적으로 큰 이슈로 떠오르면서 매 협상이 관심을 받습니다.  협상은 말싸움이 아닙니다. 논리와 숫자의 게임도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심리의 장입니다. 협상 테이블에 앉는 순간, 사람은 완벽하게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복잡한 판단을 단순화하기 위해 ‘휴리스틱(heuristics)’이라는 인지의 지름길을 사용하고, ‘앵커링(anchoring)’이라는 첫 정보에 끌려 전체 판단을 왜곡합니다. 이 글은 이 두 가지 심리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실전 협상에 적용할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경제학과 심리학, 행동과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지능적 협상가’가 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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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은 심리 게임이다: 휴리스틱을 개입시켜라

휴리스틱은 복잡한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기 위한 인지적 단축 경로입니다. 사람은 복잡한 쪽 보다는 단순한 쪽, 직관적인 방향으로 문제에 접근하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즉, 일상에서 마주하는 판단과 선택 상황에서 사람들은 모든 정보를 분석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그럴듯한 답’을 빠르게 유추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개념은 1970년대에 행동경제학자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와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립되었습니다.  그들은 1974년 『Science』에 발표한 논문 “Judgment under Uncertainty: Heuristics and Biases”에서 사람들은 확률과 빈도를 판단할 때 ‘대표성(Representativeness)’, ‘가용성(Availability)’, ‘조정과 기준(Anchoring and Adjustment)’이라는 세 가지 주요 휴리스틱을 사용한다고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휴리스틱은 빠른 판단을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왜곡과 편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인지심리학과 행동경제학의 핵심 주제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Judgment under Uncertainty: Heuristics and Biases”에서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편향된 존재임을 보여주며, 협상에서 왜 단순한 정보가 복잡한 결정을 지배하는지를 설명하였습니다. 협상가는 상대의 휴리스틱을 읽고 그 틈을 공략하는 데서 전략이 시작됩니다.  예를 들어, 협상 상대가 제안한 조건이 과거에 유사한 상황에서 좋았던 기억과 일치하면 우리는 ‘대표성 휴리스틱’에 따라 그 제안을 더 신뢰하게 됩니다.  

앵커링 효과: 제안을 선점하라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심리 무기 중 하나는 ‘앵커(Anchor)’, 즉 첫 제안입니다. 사람들은 특정 숫자나 정보가 제시되면, 그 값을 중심으로 판단을 조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때 조정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기에, 첫 숫자는 협상의 프레임이 됩니다. 트버스키와 카너먼의 유명한 룰렛 실험(1974)에서도 참가자들은 무작위 숫자를 본 뒤 완전히 상관없는 질문에 답할 때조차 그 숫자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실전 협상에서도 이 효과는 유효합니다. 2006년 아리엘리(Dan Ariely)의 MIT 실험에서는 학생들의 사회보장번호 끝자리를 기준으로 물건 가격을 추정하게 했는데, 번호가 높을수록 제시된 가격도 높아졌습니다. 아무 의미 없는 숫자조차 판단을 유도한다면, 협상에서 ‘의미 있는’ 첫 제안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조건을 정리하고 의미를 입혀라

앵커는 숫자 자체보다, 그것을 둘러싼 ‘의미와 맥락’이 함께 제시될 때 더욱 강력합니다. 이는 앵커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심리적 프레임으로 작용함을 뜻합니다. “이 가격은 업계 평균보다 낮지만 품질은 상위 10%입니다.”라는 말은, 숫자보다 내러티브를 통해 설득력을 높입니다. 하버드대 로웬스타인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의미부여된 앵커(anchor with context)’는 단순 수치보다 더 높은 협상 설득 효과를 가집니다.  실전에서는 가격, 기간, 성과 조건 등 복합적인 조건을 제시할 때 우선순위가 높은 기준을 먼저 제시하고 나머지를 조정 가능한 변수로 배치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이런 구조는 심리적 앵커를 설정하고, 이후 협상에서 최소한의 양보로 최대한의 프레임을 유지하게 해 줍니다.

정보의 단순화: 가용성 휴리스틱을 활용하라

협상 상대는 복잡한 정보를 모두 분석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쉽게 기억되고 눈에 띄는 정보에 더 영향을 받는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을 따릅니다. 협상에서는 핵심 수치, 유사 사례, 비교 그래프 등이 ‘더 쉬운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보를 구조화해야 합니다.  가령 “월 90만 원”이라는 제안은 “하루 3천 원 꼴입니다”라는 표현에 비해 훨씬 비싸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최근 가격표에 자주 보입니다.) 인간은 비교적 작고 친숙한 수치를 더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제안은 수치 자체보다도 어떻게 표현되는가가 협상 결과를 좌우합니다. 숫자를 쪼개고 비교를 붙이는 것이 심리의 방향을 바꾸는 전략입니다.

협상의 지배자: MESO 전략과 다중 앵커링

복수 제안을 동시에 던지는 MESO(Multiple Equivalent Simultaneous Offers) 전략은 휴리스틱과 앵커링을 동시에 활용하는 고급 협상 기술입니다. 이 전략은 하버드 협상 프로그램(Harvard Negotiation Project)에서 제안된 방법으로, 협상 테이블에서 주도권을 잡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예: A안은 가격은 낮지만 장기계약, B안은 높은 단가에 단기계약, C안은 중간 가격과 성과기준 포함. 이렇게 서로 다른 제안을 동시에 제시하면, 상대는 거부가 아니라 ‘선택’을 고민하게 됩니다. 앵커는 단일 수치에서 다중 구조로 확장되고, 협상 프레임은 협상가가 주도하게 됩니다.

상대의 앵커에 휘둘리지 마라

상대가 먼저 강한 앵커를 제시할 경우, 무조건적인 반박은 협상을 파행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가장 효과적인 대응은 ‘재앵커링(Reanchoring)’입니다. “그 가격은 전년도 기준으로는 가능했지만, 현재는 원자재 가격이 30% 상승했습니다.” 같은 식으로 새로운 기준과 근거를 제시하는 방식입니다.  린다 보퍼(Linda Babcock)의 1999년 연구에 따르면, 법률 협상에서도 초반 제안액이 최종 배상액에 큰 영향을 줍니다. 그러나 피고 측이 ‘데이터에 기반한 반례’를 제시했을 때 그 영향은 크게 줄었습니다. 다시 말해, 심리적으로 앵커가 고정되기 전에 논리적 재프레이밍을 통해 새로운 판단 구조를 제시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정서적 휴리스틱을 이용하라

협상은 감정이 없는 숫자놀음이 아닙니다. ‘정서적 휴리스틱(affective heuristic)’은 제안자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분위기가 긍정적인지, 대화가 진정성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최종 판단에 영향을 줍니다. 이는 종종 제안의 합리성보다 더 큰 효과를 발휘합니다.  콜린 카메러(Colin Camerer)의 『Behavioral Game Theory』(2003)에서는 반복되는 게임 구조에서 신뢰가 형성되면, 참가자들은 비합리적으로라도 상대 제안을 수용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분석합니다. 따라서 협상 시작 전에는 ‘정보제공 → 유사사례 공유 → 정서적 공감’의 단계로 분위기를 정돈하는 것이 협상의 절반입니다. 정서적 프레임이 휴리스틱을 강화시키기 때문입니다.

휴리스틱과 앵커링은 도구이다.  본질은 상호이해이다

모든 심리 메커니즘은 칼과 같습니다. 협상에서 휴리스틱과 앵커링은 전략적 도구이지만, 무책임하거나 비윤리적으로 사용할 경우 신뢰를 잃고 관계가 깨집니다. 따라서 이 도구를 쥔 자는, 상대의 편향을 이용하기 전에 자신이 얼마나 편향되어 있는지도 자각해야 합니다.  존 카너먼은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에서 “사람은 빠른 시스템1과 느린 시스템2를 동시에 운영한다”고 했습니다. 전략적 협상가는 상대의 시스템1을 이해하고, 자신의 시스템2로 그것을 다룰 줄 아는 사람입니다. 협상은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루는 관계의 기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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